성스러운 사슴의 살육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영화에 영향을 준 원작은 에우리피데스의 고대 그리스 희곡[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다. 희곡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자면 그리스 총사령관 아가멤논은 트로이 원정을 결의했지만 2년째 바람 한 점 없어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때 내려온 신탁이 아가멤논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받치라고 한다. 아가멤논은 과거에 아르테미스 여신이 아끼는 동물 중 하나인 사슴을 사냥하고 자만심에 빠졌던 적이 있다. 그 벌로 자신의 딸을 제물로 내놔야 하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아가멤논은 결국 자신의 딸을 바치기로 하고 딸을 죽이려 하는데 딸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사냥당한 모습의 사슴이 있었다고 한다.
킬링 디어에서는 희곡의 등장인물과 영화 등장인물의 모습이 겹친다. 감독은 마틴의 이상스런 행위에 대해 일절 설명하지 않는다. 영화를 파고들고 숨겨진 포인트를 찾아내며 희열을 느끼는 관객들을 위해 만들어졌나 싶을 정도다. 모든 장면과 OST, 효과음은 감독의 철저한 계산 아래 촬영되었을 것이다. 사람의 신경을 제대로 긁어대는 OST와 등장인물들의 묘한 말투 등. 촬영된 장소 및 인물들의 대사에서 인간애를 느낄 수가 없다. 병원 회의실이나 대기실도 아주 넓은 곳이다. 사람 관계뿐만 아니라 공간적인 면에서도 영화 내내 써늘하다.
※줄거리, 결말, 스포, 해석, 주관적 생각까지 전부 포함※
혈관에 부숴 넣은 드라이아이스, 휘황한 악몽
- 박평식 평론가
충격적인 오프닝
슈베르트의 Stabat Mast-1
Jesus Christus schwebt am Kreuzel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하늘로 오르고)
웅장한 음악이 검은 배경 위로 흘러 나온다. 무슨 화면이 나올지 예측이 되지 않았다. 지나치게 가깝게 촬영된 심장수술 장면에 잠시 멍 때리게 된다. 실제 수술 장면을 허락받고 찍었다고 한다. 소품으로 제작되었다기에는 참으로 디테일하다 싶었는데 실제 심장이었다니...
심장 전문의 스티븐은 수술을 끝내고 친구이자 마취의인 매튜와 시시콜콜한 잡담을 하며 병원의 긴 복도를 걸어간다. 영화에서 병원 장면은 복도가 엄청 길다. 마치 복도가 심장을 향하는 혈관처럼 느껴질 만큼 말이다.
마틴을 기다리는 스티븐
마틴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마지막으로 먹는다며 감자칩을 건들지 않는다. 이 장면에서 마틴이 감자칩을 먹는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영화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건지 가닥을 잡기 힘들게 흘러간다. 게다가 마틴과 스티븐이 등장할 때 들려오는 현악기 소리는 초반에는 눈치 못챌정도로 작게 시작했다가 점점 커진다. 묘하게 두 사람 중 한 명이 혼자 있거나 같이 등장할 때 매번 들려온다. 하지만 두 사람 앞에 다른 사람이 등장하면 끊긴다.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껄끄러운 모래알 같은 음악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스티븐은 마틴에게 시계를 선물한다. 이 시계를 선물 받은 기점으로 마틴은 의도적으로 같은 방식으로 돌려주는 모습을 보인다. [마틴은 균형을 중시한다.]
- 마틴은 스티븐 집에 초대 받았을 때 스티븐 가족들에게 선물 줌
- 마틴도 스티븐을 자기 집으로 초대함
- 마틴 엄마가 스티븐을 유혹 시도, 스티븐 뿌리치고 집에 감
- 스티븐 딸 킴은 마틴을 유혹, 마틴 뿌리치고 집에 감
- 스티븐 아들이 마틴에게 겨드랑이 털 보여달라고 요청
- 마틴은 병원에서 검사 받은 후 스티븐에게 겨드랑이 털 보여달라고 요청
- 마틴이 스티븐 팔뚝 물어 뜯음
- 마틴은 자신 팔뚝을 물어뜯어 상처를 같게 만듦
스티븐 성격
고압적이지도 자상하지도 않은 모습을 보이지만 무의식적으로 주변 사람을 통제하려는 자다. 시계의 가죽 줄이 더 좋다는 사람에게도 메탈이 더 튼튼하고 비싸다고 어필하고 부인의 파티복 의상 선택, 부부간의 잠자리 등 그냥 넘어가면서 봐도 되는 흐름 속에 스티븐 캐릭터를 꼼꼼하게 잘 녹여 넣었구나 싶다.
킴의 노래
마틴 앞에서 부른 노래는 앨리 굴딩의 [Burn] 곡.
가사 일부분
And we're gonna let it burn, burn, burn, burn
We're gonna let it burn, burn, burn
We're gonna let it burn
Oh, we're gonna let it burn
자꾸 태운다고를 반복하거니와 거목에 기대 선 킴의 모습 때문인지 영화 후반부에서 나는 킴이 죽으려나 싶었다.
묘한 아이 마틴
마틴 아빠는 젊은 나이에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집도의는 스티븐이었고 이후 스티븐은 마틴과 종종 만나왔다. 마틴은 얼마 전부터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며 자신의 아빠처럼 심장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한다. 검사 결과는 이상 없음. 이때 마틴은 스티븐에게 겨드랑이 털을 보여달라고 한다.
다리에 감각이 없어진 스티븐 아들 밥
영화 시작하고 40분이 되는 순간 주목할만한 사건이 발생된다. 스티븐 아들은 다리에 감각이 없다며 침대에 걸터앉아 있다. 스티븐은 아들이 학교 가기 싫어서 꾀병 부린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마틴의 헛소리 같은 말
밥이 걱정돼서 병문안을 온 마틴은 스티븐에게 이상한 말을 한다.
밥의 일은 정말 안됐어요.
이런 순간이 올 줄 알고 있었잖아요.
그게 바로 지금이에요.
무슨 뜻인 줄 알죠?
선생님 생각대로예요.
제 가족을 죽였으니 선생님 가족도 죽여야 균형이 맞겠죠?
누굴 죽일지는 직접 결정하시는데 안 죽이면 전부 앓다가 죽어요.
밥, 킴, 선생님 부인까지.
하나, 다리 마비
둘, 거식증
셋, 안구 출혈
넷, 사망
선생님은 안 죽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며칠 내로 결정하세요.
3단계가 시작되면 몇 시간 후 죽어요.
이제 현악기 소리는 대놓고 시끄럽게 흘러나온다.
마틴의 말처럼 밥은 그렇게도 좋아했던 도넛조차 먹질 못한다. 온갖 종류의 검사를 끝냈지만 밥의 신체에는 이상이 없다. 정신적 문제로 생각한 스티븐은 밥을 병원 복도 바닥에서 걷기를 시도해본다. 여전히 밥이 연기한다고 생각했지만 밥은 실제로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상태다.
킴도 같은 증상으로 쓰러지다
이 장면에서 나오는 음악은 Carol of the Bells.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지는 킴. 지금까지 느긋하게 봤었다면 슬슬 영화가 발동을 걸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스티븐은 다급한 마음에 마틴 집을 찾아가지만 문 밖에서 소리만 한참 지르다 돌아간다. 스티븐은 마틴에 한말을 부인에게 털어놓는다. 스티븐 부인은 마틴 아빠 심장 수술할 때 술 마셨냐며 스티븐 실수로 죽은 것은 아닌지 질문한다. 스티븐은 마취의는 사람을 죽일 수 있어도 자신은 사람을 죽이지는 못한다고 할 뿐이다. 결국 스티븐 부인은 마취의를 찾아가 이상한 행위를 해주는 대가로 그 수술 날 스티븐이 술 마셨음을 알아낸다.
마틴의 능력
마틴은 병실에 있는 킴에게 전화를 걸어 창밖에 자신이 있으니 내다보라고 한다. 킴은 마틴의 전화 통화만으로도 다리에 힘이 생기고 잠시나마 걷게 된다. 이제 마틴이 무슨 능력을 부리고 있음이 확실하다. 세뇌를 했나 싶기도 하고 이상할 뿐이다.
마틴이 신적 존재임을 받아들이고 봐야 한다.
희곡에 나온 아르테미스 여신은 마틴.
사슴을 사냥해서 죽인 총사령관 아가멤논은 스티븐.
아가멤논이 죽인 사슴은 마틴의 아빠.
마틴은 스티븐에게 아들, 딸, 부인 중 한 명을 죽이면 이 모든 일이 끝날 것이라고 선포했다. 제물을 바쳐야 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게 정의에 가깝다는 마틴
스티븐 부인 안나는 마틴의 집에 찾아간다. 안나는 잘못은 스티븐이 저질렀는데 왜 자신이 죄를 받아야 하냐고 질문한다. 마틴은 스티븐이 자신의 스파게티 먹는 모습이 아빠랑 똑 닮았다고 해서 좋았는데 알고 보니 모든 사람이 면을 돌돌 말아서 입에 넣을 뿐이었다며 아빠가 죽었을 때보다 이점이 더 슬펐다고 한다.
그런 뒤 안나의 질문에 답한다. '이게 정의에 가까워요.'
관객은 마틴이 복수중이라고 생각 중이다. 마틴 입장에서는 균형 맞추기에 따른 정의를 실행할 뿐이란다. 스티븐 가족 입장에서야 복수하는 행동인 거고 마틴 입장에서는 정의로 규정짓는 것이다. 마틴은 신적 존재기 때문에 사회적 관념과 상관없이 '정의'라고 말한 순간 스티븐 가족은 마틴에게 끌려가는 형상이 될 수밖에 없다.
집으로 온 킴과 밥
남매는 거동불가와 거식증 상태로 퇴원한다.
스티븐은 마틴을 납치 해 지하 창고에 감금했다. 마틴은 스티븐의 팔뚝을 물어뜯는다.
예를 하나 보여주죠.
내가 사과해야 할까요? 아니요.
그 상처를 만져 줘야 할까요? 그러면 아프기만 하겠죠.
둘 다 괜찮아지려면 방법은 하나뿐이에요.
이제 알겠어요?
이건 비유예요.
말을 끝낸 마틴은 자신의 팔뚝을 물어뜯는다. 결국 스티븐이 가족 중 한 명을 죽여야만 다 괜찮아질 거라는 얘기다. 스티븐은 마틴을 총 쏴 죽이려다 망설인다. 대사 그대로..'총알 하나로 넷을 죽이는 짓'이 되기 때문이다. 마틴이 죽으면 밥, 킴, 안나 셋 다 죽으니까.
생존본능만 남은 안나, 킴, 밥
스티븐에게 선택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만 살 수 있다.
밥은 엄마 아빠가 자신에게 피아노를 사줬는데 다음 달에나 오기 때문에 선택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 아빠가 머리 자르라고 할 때 자를 것을... 하는 후회와 함께 스스로 머리카락 자른 후 아빠에게 고분고분한 아들임을 입증.
킴은 남동생 밥에게 모두가 널 사랑하지만 아빠가 너를 선택해도 사랑이 부족해서 아니라며 위로하는 척... 아빠가 너를 죽이면 니 MP3 내가 갖어도 되냐는 질문. 지하에 있는 마틴에게 찾아가 자신과 도망가자며 제발 다리만 걷게 해달라고 했다고 요청을 들어주지 않자 혼자 집 밖을 나간다. 기어가야 하다 보니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스티븐에게 발견된다. 킴은 아빠가 생명을 줬으니 앗아가도 상관없다며 사랑한다고 말한다.
안나는 마틴의 총상 치료 후 양쪽 발에 입맞춤을 한다. 남편에게도 잘 보여야 하고 이 모든 저주 같은 일을 풀 수 있는 사람이기에 바짝 몸을 낮춘다. 남편에게는 자신은 아직 임신할 수 있다면 아이 한 명쯤 포기해도 괜찮다는 뉘앙스. 킴이 병원에서 욕한걸 스티븐에게 말해서 킴의 나쁜 점 부각함.
서로를 향해 언성을 높여 대화하는 것도 아니고 고요하게 나 빼고 너희들 중에서 죽어야 한다는 염원이 실려 있는 대화다.
책임 회피하고픈 스티븐
아이들 학교를 방문한 스티븐은 학교 선생님한테 전후 사정 말하지 않고 질문한다. 만일 밥과 킴 중 한 명을 선택해야 된다면 누굴 선택하겠느냐고...
킴은 이피게네이아 비극 에세이를 쓴 적 있다고 나온다. 제목부터 이피게네이아 비극을 참고했음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영화 후반부에는 확실하게 보여주는 셈이다.
안구출혈 시작된 밥
스티븐은 밥의 얼굴 위로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 준다. 밥은 다시 한번 자신이 살아야 하는 이유를 어필한다. 자신에게는 친한 친구가 세명 있다고. 친구는 많을수록 좋은 거니까 더 살아야 친구도 생기는 거고. 차라리 나이에 맞게 엉엉 울면서 아빠한테 매달리면 나을 텐데 온 식구가 현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스티븐 식구는 누가 더 못되거나 착하거나 하는 차이점을 보여주진 않는다. 어린 밥이라고 해서 어리광 부리고 유약한 모습도 없다. 엄마인 안나에겐 모정이 다 증발해버린 모습이다. 학교 선생에게 찾아가 두 아이 중 한 명을 선택하라면 누굴 택하겠냐는 스티븐 모습도 한심하다. 자신으로 발생된 일이니 가족들에게 미안하다고 통곡을 해도 부족 할판에... 킬링 디어는 가족드라마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 모두가 동일한 톤, 비슷한 속도감의 대사, 절제된 움직임이다. 단 한 명도 성격이 튀질 않는다. 그러다 보니 킴이 MP3 얘기를 할 때면 쟤가 죽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안나가 시험관 아이라도 낳자고 제안하는 모습에서는 안나가 죽어도 상관없겠다 싶었다. 다만 밥은 워낙 어리고 아이가 살고 싶어 하는 소망과 아빠에게 잘 보이려는 행위가 그 나이다웠기에 밥이 죽지 않았으면 싶었다.
촉박한 시간
망설일 시간이 없다. 밥이 몇 시간 후 죽게 되면 킴, 안나도 머지않아 죽는다. 그전에 스티븐은 누굴 죽일지 선택해야 한다. 선택 장애, 무기력, 책임회피 삼종 타이틀을 장착한 스티븐은 세 명을 삼각형 포인트 위치 놓고 자신은 복면 쓴 뒤에 빙글빙글 돌다가 멈춘 후 총쏘기. 총은 밥에게 발싸된다.
내 생각.
어쩌면 밥이 죽을수밖에 없다. 킴, 안나는 악착같이 살기 위해 마틴과 스티븐에게 별짓을 다했다. 하지만 밥은 그들만큼 머리를 굴릴 경험도 없고 여전히 순수하다. 마틴 아빠가 무슨 죄를 지어서 심장 수술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다. 이렇게 연결을 시켜서 보면 그만큼 순수한 영혼이 재물이 되는 것이 스토리상 맞아 떨어진다.
정의가 맞나?
마지막 장면 식당에서 나오는 곡은
Bach의 Johannes-Passion
"Herr, unser Herrscher!(요한 수난곡- 오 주님, 우리의 왕이시여!)
모든 것을 잃은 듯 맥없이 식당에 앉아 있는 스티븐과 안나, 킴. 그들에게 잠시 시선을 준 뒤 마틴은 안쪽 자리로 향한다. OST에서 알 수 있듯이 세 명에겐 신이 된 마틴이다.
킴은 감자칩에 케첩을 뿌려 먹는다. 영화 초반 마틴은 좋아하는 감자칩이라 마지막에 먹는다면서 먹는 모습은 안 나왔는데,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킴이 감자칩을 먹는 모습으로 연결됐다.
마틴은 물을 마시며 세 명이 식당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며 영화는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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