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87 _ When the Day Comes, 2017 줄거리 결말 (감독 장준환)

감독

장준환
다른 작품
2003년 지구를 지켜라
2013년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장르

드라마

등급

15세 관람가

출연

김윤석, 하정우, 유해진

개봉일

2017. 12. 27

관객수

7,231,770 명

줄거리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습니다 "
1987년. 국민의 눈과 귀를 통제하던 정부의 민낯이 드러나는 사건 발생. 민주화의 발판이 되었던 그 시절. 가슴 뜨거워지는 영화.


리뷰에서는 등장인물 설명과 내용 누설, 주관적 생각이 포함니다. 안 보신 분들께는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박처원 처장 역의 믿고 보는 배우 김윤석
실존했던 인물 박처원은 월남한 인물로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평안도 사투리를 사용한다.

"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습니다"라는 시대상을 그대로 반영한 말을 했던 박처원.

세상이 변화될 리 없다는 확신을 갖고 권력 남용의 끝판왕을 보여준다. 국민들의 눈과 귀를 완벽히 통제할 수 있었다고 믿던 시절이다.




최환 검사 역의 하정우
물고문으로 사망한 박종철의 화장동의 서류 도장을 찍어 주지 않고 소신대로 행동한다. 영화를 굵직하게 끌고 나가는 비중 있는 배역인 줄 알았으나 정의의 편에 선 검사 정도로 마무리된다.


영화는 정부와 국민들 사이에서 언론 역할 중요성을 제대로 보여줬다. 백천 날 같은 일이 일어나도 언론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1980년대로 별반 다르지 않은 정부를 가졌을 것이다.

물고문으로 박종철이 사망한 지 불과 8시간 만에 화장을 하려는 시도. 동의하지 않는 검사. 박종철 사망 원인에 대한 의문을 파헤치려는 언론과 이를 통해 진실을 마주하게 된 국민들이 드디어 정부에 대항하게 된다.



 

한명용 교도관 역의 유해진
수감된 해직기자와 정보 교류를 통해 외부에 있는 사람들에게 글을 전달하는 중간 역할을 한다. 특유의 능글능글한 연기 및 사람 짠하게 만드는 소시민 연기까지 감탄을 자아낸다. 과거형 비주얼 덕분인지 현재 진행 영화보다는 이런 역이 제격인 유해진 배우.



연희 역의 김태리
영화 흐름에 필요했던 적절한 인물. 그러나 실존 인물은 아니다. 삼촌인 유해진이 가져온 정보를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는 핵심 인물들에게 전달해주는 역을 맡았다. 이후에는 이한열과도 만나게 된다. 그 당시 모든 대학생들이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것은 아니다. 시국을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 + 무관심한 연희는 일반 대학생에서 정신적으로 깨어나는 대학생 모습으로 변화된다.

 

 

박종철 삼촌 역의 조우진
강철비 영화 리뷰에서도 좋아하는 배우라고 밝힌 것처럼 1987 영화에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 성격이 상당히 내성적인 분이라고 하는데, 감정선이 이렇게나 다양하다니 놀라울 뿐이다. 짧은 분량으로 나왔지만 조카의 부검을 보며 우는 모습과 차 안에서 우는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특별 출연자들 모습/ 박종철역(여진구), 이한열 역(강동원)은 사진이 없다.

영화는 막바지 10여 분을 남겨둔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민주화 운동 모습이 그려진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을 보여줬던 박처장(김윤석)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관련자들은 감옥에 가고 이한열의 최루탄 피격 사진은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다.


이질감이 느껴지는 배우가 한 명도 없다. 영화의 흐름도 사실을 기반으로 추가된 억지성 없이 잘 만들어졌다. 6월의 항쟁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영화다.

사실을 바탕으로 탄탄하게 만들어진 영화

 

 

 

 

 


지금부터는 1987년 6월 항쟁 및 박종철 열사, 이한열 열사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치안본부장 강민창 역의 우현 배우는 1987년 최전선에서 직접 겪고 투쟁했던 운동권 학생이었다. 사진은 영화의 장면이 아닌 실제 이한열 열사 장례식 때의 모습이다. 아마 장준환 감독도 이러한 모습을 보고 우현 배우를 캐스팅했지 싶다.



[단독] 87년 6월 이한열 열사 피격 전후 사진 최초 공개

당시 한국 방문했던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기자 6월 항쟁 30주년 맞아 이한열 기념사업회에 사진 제공 “미국 돌아온 후에야 이한열의 모습 담긴 줄 알아”

www.hani.co.kr

한 번쯤 보았을 이한열 열사의 최루탄에 맞은 후의 모습. 오래전 이 사진을 처음 봤을 때 가슴 한편이 뜯어져 나가는 아픔을 느꼈다. 그 시절.. 그 많은 사람들의 투쟁으로 보다 안락한 환경에서 살게 되었으니 진심으로 감사해야 될 일이다.


 

(좌) 왼쪽 현수막 뒤 피격 전 이한열 열사 모습 / (우) 피격 후 쓰러진 모습

7월 9일 열린 장례식 노제에 100만 명 이상이 운집하였다.

짧은 시간 이루어낸 민주 역사를 지닌 대한민국. 선봉대에서 이끌어준 사람들과 함께 싸운 국민들이 있었기에 현재까지도 튼튼하게 유지가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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